번역  

I. 2. 피겨스케이팅의 역사

1) 유래

 피겨 스케이팅(Figure Skating)이 시작된 정확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600년대 부터 이미 스케이팅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세계 최초의 피겨 스케이팅 클럽이 설립된 것은 1742년 영국에서였다. 실제 피겨스케이팅은 모든 스케이팅 종목 중에서 가장 빠르게 스포츠 종목으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1770년 미국인 화가 벤자민 웨스트가 세계 최초의 스케이트 선수권에서 우승했다라고 문헌에 전해지고 있으며 이때부터 피겨의 초보자도 할만한 스텝들이 고안되고 비엔나, 부다페스트, 프라하, 뮌헨, 베를린 등은 스케이트 열광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초기의 피겨 스케이팅은 매우 기계적이고 딱딱해서 단지 얼음위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형태의 도형을 블레이드(Blade)로 그리는 것이어서 현재 우리가 흔히 피겨 스케이팅 하면 떠올리는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음악에 맞춰하는 연기(performance)와는 크게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피겨를 '빙상의 예술'로 만든 사람은 잭슨 하인즈(Jackson Haines:1840-1876)였다. 그는 발레 무용수출신으로 여러 번 유럽을 드나들면서 리듬감 없이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고 음악과 결부시킨 스케이팅을 고안하며 현재 우리가 즐기는 피겨 스케이팅의 주요한 기본을 만들어 '현대 프리 스타일 피겨 스케이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몸을 딱딱하게 긴장시킨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얼음 위에 일정한 형태의 도형만 반복해서 그리고 있는 것을 계속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90년 세계스케이팅연맹(ISU:International Skating Union)의 결정으로 컴퍼서리 (Compulsory:School Figure)요소(지정된 도형을 블레이드로 그리는 것)가 공식대회에서 제외될 때까지는 초기의 기계적인 요소가 중시되었었다. 어쩌면 그 때의 ISU의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연기를 선보인 선수가 컴펄서리 요소 때문에 낮은 순위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피겨스케이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27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2)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이모저모

 근 20년 간의 올림픽은 수많은 재밌는 승부를 남겼다.

사진 : 카타리나 비트

88년 올림픽 여자싱글은 카타리나 비트(Katarina Witt)로 묶어서 말할 수 있다. 동독을 대표하는 최고의 여자 피겨 선수였으며 동계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세계선수권 4회 우승,유럽선수권 6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특히나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는 프리 프로그램에서 라이벌인 데비 토마스와 같은 곡인 Carmen을 사용하여 이 당시의 대결을 '카르멘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88년 올림픽 최고의 승부는 남자싱글 부문에서 일어났다. 바로 "브라이언 전쟁"이라고 불렸던 캐나다 대표 브라이언 오서(Brian Orser)와 미국 대표인 브라이언 보이타노(Brian Boitano)의 대결이었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 점프를 성공시키며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라고 불렸고,  캐나다산 버터바른 섬세한 스케이팅을 선보이던 브라이언 오서와 남성미 넘치는 연기와 머리 위로 손을 들어올려 뛰는 "타노점프"를 창시한 브라이언 보이타노는 계속 1, 2위를 주고 받으며 수많은 피겨 팬들을 열광시켰다.

6-9-1_orser.jpg 6-9-2_boitano.jpg

사진: 왼쪽이 오서, 오른쪽이 보이타노

 그리고, 캘거리 올림픽에서 둘 다 합계 81.8 이라는 동점을 받았으며 9명의 심판 중 5명이 보이타노를 1등, 오서를 2등으로 평가하였고 4명은 반대로 오서를 1등, 보이타노를 2등으로 평가하여 종이 한 장 차이로 보이타노가 금메달을 차지하며 보이타노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이 승부는 "역대 최고의 승부"로 기록되어 있다. 

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는 여자 싱글에서 일본인 선수끼리의 대결이 벌어졌다. 바로 미국 대표인 크리스티 야마구치(Kristi Yamaguchi)와 일본 대표인 이토 미도리(Ito Midori)의 대결이었다.
(재밌게도 크리스티 야마구치는 철저하게 자신은 미국인이다라고 말하여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진 못했다.)

 

클릭하면 닫힙니다.

사진 : 왼쪽 크리스티 야마구치, 오른쪽 이토 미도리

크리스티 야마구치는 트리플 러츠 점프와 섬세한 손동작으로 대표되는 "예술적인 선수"였다면 이토 미도리는 예술성은 떨어졌으나 여자 싱글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구사했으며 점프에서만은 최고였을 만큼 "점프가 우수한 선수"였다.

올림픽에서 둘의 대결은 "아름다운 프로그램"을 선보인 크리스티 야마구치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것은 피겨에서 "예술성"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서서히 심어주기 시작했다.
또한 아시아 국적의 선수가 역사상 처음으로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을 우승하고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것은 이후 아시아 피겨(정확히 이야기하면 일본 피겨)를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여자 싱글 부문은 미국발 스캔들에 의해 수많은 관심을 모았다. 당시 미국 여자 피겨계는 낸시 캐리건(Nancy Kerrigan)과 토냐 하딩(Tonya Harding)이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사진 : 낸시 캐리건

 

토냐 하딩

사진 : 토냐 하딩

여자로는 두 번째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며 승승장구할 것 같은 토냐 하딩이었지만 늘 같은 국적의 선수이자 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동메달 리스트인 낸시 캐리건에게 밀리곤 했던 그녀는 결국 올림픽 출전권이 걸렸던 전미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자신의 전남편을 시켜 낸시 캐리건을 피습하게 하여 낸시 캐리건의 다리를 다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낸시 캐리건은 전미선수권 대회를 포기했다.

하지만 전미선수권 대회 이후 이 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미국빙상연맹 측은 억울하게 올림픽 티켓을 놓친 낸시 캐리건에게 올림픽 티켓을 주게 된다.
(이 때 눈물을 삼키며 낸시 캐리건에게 출전권을 넘긴 선수가 바로 미셸 콴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토냐 하딩이 이 사건을 주도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아 토냐 하딩 역시 올림픽 출전을 하게 된 상황. 따라서 전 세계인의 관심은 과연 두 사람 중 누가 우승할 것인가에 관심이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생각치도 못했던 선수가 치고 올라왔으니 그 선수가 바로 우크라이나 선수였던 옥사나 바이울(Oksana Baiul)이다.

 


사진 : 옥사나 바이울

자기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친 낸시 캐리건에 비해 점프 기술은 밀렸으나 빛나는 예술성과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던 발레 기술의 접목, 그리고 아름다운 도넛 스핀을 선보이며 당시 올림픽을 봤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끈 그녀는(당시 올림픽에서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옥사나 바이울의 쇼트 프로그램이었던 Swan Lake를 떠올린다.)아직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긴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낸시 캐리건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등장은 진정으로 피겨에서 "예술성"을 중시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는 남자부문에서도 아름다운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 선수가 나왔다. 바로 러시아 선수였던 일리아 쿨릭(Ilia Kulik)


사진 : 일리아 쿨릭

세계선수권 우승은 단 한번도 하지 못했으나(늘 아쉽게 2위를 차지하곤 했다.) 올림픽에서는 쇼트, 프리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그..
쇼트에서 예술점수 모두 5.9를 받았으며 아름다운 외모와 어울린 그림같은 점프, 우아한 동작과 트랜지션은 그의 마지막 코치였던 타라소바로 하여금 그를 "은반위의 시인"이라고 칭하게 하였다.

그러나 나가노에서도 역시 수많은 주목을 받은 부문은 바로 여자 싱글 부문이었다. 바로 미국 국가대표인 미셸 콴(Michelle Kwan)과 타라 리핀스키(Tara Lipinski)의 대결..


사진 : 왼쪽 타라 리핀스키, 오른쪽 미셸 콴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미셸 콴이 앞섰으나 프리 프로그램에서 타라 리핀스키가 지금 여싱들도 거의 구사를 못 하는 3Lo-3Lo을 성공시키며 수작인 "The Rainbow"를 완벽하게 해 내며 금메달을 가져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고작 15살이었던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운 생활을 버티기 힘들어 바로 프로로 전향하고 어린 나이에 무리하게 연결3룹을 구사한 여파 때문인지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되면서 동계올림픽에서 연령제한이 만들어지게 했다.

한편 완벽한 연기를 하고도 은메달을 목에 건 미셸 콴은 그 이후의 대회들을 휩쓸었다.

그리고 이 때 러시아에서 미셸 콴에 대적할 선수가 나오는데 그녀가 바로 이리나 슬루츠카야(Irina Slutskaya).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을 앞두고 이 둘이 금메달 대결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한 이는 없었다.

그러나...사라 휴즈(Sarah hughes)가 회전수 부족한 3-3을 앞세워(구채점제이기에 문제되진 않았다.) 조금씩 실수를 한 이리나 슬루츠카야, 미셸 콴을 제치고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이후 사라 휴즈는 치팅 점프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또한 미셸 콴은 세계선수권을 무려 5번이나 우승하는 금자탑을 쌓고도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비운의 여제가 되고 말았다.

 
사진 : 사라 휴즈


솔트레이크 올림픽 최고의 사건은 바로 페어에서 일어났다. 당시 페어부문에서 러시아의 엘레나 베레즈나야-안톤 시카룰리제 조가 비록 한 번 실수를 하긴 했지만 뛰어난 예술성과 높은 기술 난이도를 바탕으로 완벽한 프리 연기를 펼쳤지만 예술성과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았던 캐나다의 제이미 세일-데이빗 펠레티에 조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이런 저런 건 따지지도 않고 넘어지지도 않은 캐나다팀이 은메달이라며 북미 언론들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고 결국 "프랑스 심판이 러시아 쪽에 매수 당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어처구니 없게도 공동 금메달로 결정되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연기를 펼치고도 죄인 취급 받았던 B&S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짓는 페어팬들이 많다.)

IMAGE: Sale, Pelletier, Berezhnaya and Sikharulidze

사진 : 왼쪽이 캐나다조, 오른쪽이 러시아조

그러나 프랑스 심판이 후에 자신을 매수하려고 한 쪽은 캐나다쪽이었다고 이야기하였고 이를 캐나다쪽이 부인하면서 사건은 그렇게 무엇이 진실인지 모른 채 수많은 논란만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피겨 채점제가 6.0 만점의 평점제에서 지금처럼 기술점과 예술점으로 나누어 채점하는 신채점제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묻히긴 했지만 중국의 쉔 수에-자오 홍보 조가 아시아팀으로는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중국페어가 세계 정상권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도 빛난 부문이 있으니 바로 남자 싱글 부문..
난이도 높은 시원한 점프와 당시 탑 레벨 선수들한테서는 보기 힘들었던 시원한 스텝 시퀀스를 선보이며 "기술과 예술을 모두 갖춘 선수"로 인정받은 알렉세이 야구딘(Alexei Yagudin)이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프로그램을 남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예술점수에 4명에게서 6.0을 받은 이 기록은 구채점제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신채점제로 바뀌면서 쇼트와 프리에서 스텝이 규정요소가 된 것에는 그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사진 : 알렉세이 야구딘

 

당시 은메달을 딴 선수 역시 남자 레전드인 예브게니 플루쉔코(Evgeni Plushenko).


사진 : 예브게니 플루쉔코

시니어에 와서도 비엘만 스핀을 구사할 만큼 유연했던 그는 높은 난이도의 점프도 안정적으로 뛰면서 야구딘 은퇴 후 신채점제하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리고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서 맡겨 논 금메달 찾아가듯 우승했다. 당시 그는 토리노 올림픽에서 쇼트 90.66, 프리 167.67을 얻으며 종합 258.33으로 세 개 부문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는 진기록을 연출하기도 했다(프리와 종합 기록은 2008 고양 사대륙 대회에서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갱신했으나 쇼트기록은 아직도 갱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자 싱글 부문에서는 또 다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신채점제 이후 여자 피겨계는 여자 선수로는 최고 난이도 점프인 3Lz-3Lo을 구사하며 프리에서 최초로 130점대를 받은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뛰어난 스핀, 스파이럴을 바탕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펼치며 쇼트에서 최초로 70점대라는 점수를 받은 사샤 코헨(Sasha Cohen)이 호시탐탐 1위를 노리고 있었다.

 

사진 : 사샤 코헨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이 두 선수가 금메달 경쟁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나 사샤 코헨은 예상대로 프리에서 점프 컨시에 문제를 보였고 이리나는 자신의 장기인 트리플 룹 점프에서 넘어지며 두 사람 다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금메달은 2004년 세계선수권 우승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못 냈던 아라카와 시즈카(Arakawa Shizuka)가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 끝에 가져갔다. 

 

사진 : 왼쪽부터 사샤 코헨, 아라카와 시즈카, 이리나 슬루츠카야

올림픽에서 그동안 남자 싱글 부문을 제외하면 클린 프로그램이 나온 적이 거의 없다 특히나 여자 싱글 부문에서는 확실하게 금메달 받을 만한 연기라고 평가받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그러한 프로그램이 나오길 바란다.

글 : 꺅~~피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