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 연기는... 아무런 배경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보면서 "아름답다~" 란 감흥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승냥이라면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이 볼 수 없는 것, 승냥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그 무엇... 아무래도 이런 것들을 바랄 것이다. (특히... 여왕님의 친위대라고 자부하는, 우리 한국산 승냥이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배경 지식에서부터 남보다 앞서 있어야만 한다. 뭔가 아는 것이 좀 더 있어야 눈에 보이는 것도 많아지게 되고, 보이는 게 많아질수록 감동도 커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해서 뭐, 필자의 지식이 딱히 대단한 수준이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팝이든 클래식이
         든 듣기 좋은 음악이라면 닥치는 대로 들어보고... 대학 시절,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인문학 공부에 푹 빠져서 살았
         던 세월이... 이런 글을 쓸 때면, 조금이나마 보답(?)을 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따름이다.


<연아> 선수의 올 시즌 SP 제목은 <죽음의 무도> 였다. 의욕에 불타는(?) 한 승냥이가 있어... 배경 음악의 작곡가인 <생상스 (Saint-Saens)>가 프랑스 사람이기에, 불어 원제를 알아보니 <Danse Macabre> 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승냥이의 불어 실력은... 유명한 불어 용어나 몇 개 겨우 읊조릴 정도 밖에는 안된다.) 영문 표기를 알아보니 <Dance of Death> 이다. 죽음의 무도? 맞기는 맞는가 보다.

그런데...

"죽음" 이라고 하길래, 뭔가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일 줄 알았더니... 여왕님의 연기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최소한 장엄하다거나 혹은 서글프다거나 하는 분위기가 한번은 연출되겠지 싶었는데... 웬걸? 그와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헉... 완전히 허를 찔린 기분이다. 도대체... 이것은 뭥미? (^^)

오히려 우리말 "죽음" 의 속된 의미가, 여왕님의 연기를 더욱 잘 설명해 준다. 말 그대로... "여왕님의 무도, 그거 죽음이었다~" 가 되겠다. "죽여주는 무도~, 끝내주는 무도~" 인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나 싶어서 <macabre>의 확장된 뜻을 찾아 본다. 근데... "무시무시한, 소름끼치는~" 밖에는 없다. 영어 표현인 <of death> 역시 "죽음의~" 아니면 "사신(死神)의~" 라는 뜻일 뿐이다. (사전적 해석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이쯤 되면, 슬슬 뒷골이 뻐근해지기 시작한다... (^^)

사정이 이러한 탓인지... 필자는 지금껏, 여왕님의 올시즌 쇼트프로그램을 명쾌하게 해석해 놓은 글을 발견하지 못했다. (기술적인 분석 및 프로토콜의 해석에 관해서라면, 필자가 쓴 것보다 몇 배나 더 알찬 내용이 가득했던 글들이 있었던 것에 비해서... 예술적인 감상 측면의 글들은 거의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원인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보는 것이다.

뭐, 읽기 편하시도록 결론부터 말하고 가자면... "죽음? 이 단어 한 마디에 전혀~ 얽매이실 필요 없음!!" 이 되겠다. (^^) 이번 시즌의 SP 를 통해서, 여왕님이 표현하고자 하셨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바로 "생명력~" 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의 생명력이 아니라 "죽은 자들을 깨워 되살릴 만큼, 강렬한 생명력~" 이다.)

모든 오해는 <Danse Macabre>를 그저 <죽음의 무도> 라고, 사전적으로 해석해 버린 단순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맨 먼저 일본인들이, 이 말을 <死の舞蹈>라고 해석해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Danse Macabre>는 때로 <죽음의 무도>, 다시 말해 "죽은 자들의 춤~" 이란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사신(死神)의 무도>, 즉 "죽음의 신이 베푼 무도회~" 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 것이다. (^^)


■  <Danse Macabre> 의 유래


<죽음의 무도> (불어로는 danse Macabre, 영어로는 dance of death, 일어로는 死の舞蹈) 란... 원래 14C 경부터 나타난 중세 유럽의 미술 쟝르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시면, 어떤 유형의 그림이었는지 쉽게 찾아보실 수 있을 것이다.)

흑사병과 계속되는 전란 속에서 집단적으로 죽어간 인간들의 넋을 위로하는 그림이라고나 할까? 일단의 화가들이, 무덤에서 나온 해골들이 손을 잡고 윤무(輪舞)하는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절대적인 공포 속에서 덧없이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연민을,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남았다고 하나 여전히 피할 길 없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승의 자들에 대한 냉소를... 동시에 표현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쟝르는 이후,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꾸준히 계승되게 된다. 그 와중에 때로 이 해골들은 교황이나 황제, 영주 등의 손을 잡고 다함께 춤을 추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고, 검은 망토 차림에 긴 낫을 든 죽음의 신 (死神) 들이 더불어 등장하기도 하였다. 종교와 세속을 막론하고, 그 어떤 살아있는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하며 덧없다는 인식인 동시에... 절대적이던 중세 기독교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근대의식의 발로를 표현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 경우, danse Macabre (또는 dance of death) 는... 일어로 死の舞蹈, 우리말로 <죽음의 무도>라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말 그대로 "죽은 해골들의 춤사위~" 인 것이니까 말이다.


■  <앙리 카잘리스 (Hanri Cazalis)> 의 Danse Macabre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사이, 유럽 전역의 여러 나라에서 민족정신이 각성됨과 때를 같이 하여 <낭만주의>의 문예사조가 생겨났다. 이성적인 질서와 균형잡힌 형식미를 존중하여, 정적(靜的)이며 조각적이었던 <고전주의>에 반하여... <낭만주의>는 정열적 자아의 해방, 국민적 (혹은 지방적) 전통에의 복귀, 자연에 대한 사랑, 명상적 신비주의, 이국 정서 등을 추구하여 상상력의 폭을 넓혔고, 서정시에 음악성을 회복시킴과 더불어 현실에 대한 관심을 자각시켜 상징주의와 사실주의로의 길을 열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국들보다 먼저 종교 개혁이 시작되어 "개인주의" 가 조장되고 이에 힘입어 빠르게 "감정적 신비주의" 가 발생한 영국, 독일 등에 비해서... 여전히 절대왕정과 가톨릭 교회의 지배하에, 그리스 로마에서 규범을 찾으려는 고전주의가 우세하였던 프랑스에서는... (이미 영, 독 등에서는 이 사조가 쇠퇴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182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도입이 늦었던 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문학운동으로서의 <낭만주의> 사조는, 프랑스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이후 <보들레르>를 거쳐 <랭보>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문학" 발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시에 이 시기는, 후대의 평론가들에게 "퇴폐주의 (혹은 퇴폐적 낭만주의)" 라고 비판을 받게 되기도 하는 "초월적 신비주의" 사조 또한 문단에 널리 퍼져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예컨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1821~1867)> 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시집 <악의 꽃>은, 당시 출간하자마자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여섯편 삭제 판결이라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으며...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는 문제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후대 비평가들의 말처럼 보들레르의 텍스트는 동시대의 독자보다는 후세의 독자를 겨냥한 문학이었던 것이다.


    ☞  여담이지만, 85학번인 필자의 대학 시절... 당시 우리의 정치 상황은, 1848년 혁명의 주도세력이었던 부르조아가
         보수적인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맹목적인 "자본주의 발전" 이데올로기에 편승했던 보들레르 시대의 상황과 아주
         흡사했다고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겉으로는 도덕성과 형재애를 내세우면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를 억압했던 서구 계몽주의 이념에
         대하여 통렬한 야유를 퍼붓고... 거대한 자본의 힘에 떠밀려 도시를 배회하는 '산책자' 및 '부랑자' 들의 모습을
         가리켜 부르조아 사회에 대항하는 하나의 은유적 방법으로서 <권태>와 <게으름> 및 <추악함>으로 무장한 인물
         들이라고 묘사했던 보들레르의 시는... 기득권에도 운동권에도 속할 수 없었던 나약한 군상들에겐 변명의 논거인
         동시에, 일종의 현학적인 도피처가 되어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저 시절의 필자에게... 보들레르의 시구(詩句)들은 "끊임 없는 술타령의 방편" 으로서
         가장 크게 유효하게 써먹혔던 것 같기도 하다. (^^) "늘 취해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요, 이것만이 문제
         이다. 그러니, 취하라~" 벌써 오래전에 제목도 잊어버렸지만, 보들레르의 이 시구만은 아직도 기억이 나니 말이다. (^^)


또한... 10대 시절부터 이미 채석장 인부, 용병 입대 등으로 반항과 방랑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경이로운 조숙성과 때 이른 절필로 일찍감치 전설(레전드)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아르튀르 랭보 (Arthur Jean Nicolas Rimbaud, 1854~1891)> 같은 경우에는, 아예 한술 더 떠서... 사물이 배후에 지니고 있는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선 평소의 습관과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의 혁신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세상 질서에 대한 전면적인 전복을 꿈꾸기도 했다.

당시 <랭보>가 주창했던 시론(詩論)을 <예견자 (le voyant = the indicator) 시학>이라고 하는데... <감각의 착란> (무뎌져 있는 감각을 의도적으로 새롭게 조합하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 과 <언어의 연금술> (세상의 비밀을 꿰뚫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시어의 창조가 필요하다고 주장) 을 통해서... 현실을 초월한 다른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미리 아는 자, 즉 예견자로서의 시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는 주장이었다.


    ☞  아아... 프랑스 상징시 이야기, 너무 긴 거 아냐? 슬슬 지겨워지는데... 하시는 분들, 많으실 줄 안다.
         정말 잘 참아주셨다. 이상으로 그 이야기는 끝이다. 이제 <연아> 선수와 관련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러한 분위기였던 당시의 프랑스 문단에... <앙리 카잘리스 (Hanri Cazalis, 1840∼1909)> 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당대의 유행이었던 <초월적 신비주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이 인물은... 중세 이래 계승되어 오고 있는 미술의 한 쟝르인 <죽음의 무도> 류의 작품 세계에,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완성시킨... 한 편의 시를 발표하게 된다. 제목은, 동명(同名)인 미술 쟝르명을 그대로 차용했기에... 이 또한 역시, <Danse Macabre>가 되겠다.


      Zig, zig, zig, Death in a cadence,
      Striking with his heel a tomb,
      Death at midnight plays a dance-tune,
      Zig, zig, zig, on his violin.

      The winter wind blows and the night is dark;
      Moans are heard in the linden trees.
      Through the gloom, white skeletons pass,
      Running and leaping in their shrouds.

      Zig, zig, zig, each one is frisking,
      The bones of the dancers are heard to crackㅡ
      But hist! of a sudden they quit the round,
      They push forward, they fly; the cock has crowed.


      스윽, 스윽, 스윽... 선율 속엔 사신(死神)의 모습.
      발 뒤축으로 묘석을 두드리며
      죽음의 신이 한밤중에 무도곡을 켜네.
      스윽, 스윽, 스윽... 사신(死神)이 바이올린을 켜네.

      겨울 바람 불어 오고 밤은 깊은데,
      보리수 숲 속에선 신음 소리 들리는데,
      어둠을 헤치며 창백한 해골들이 지나쳐 가고 있네.
      수의(壽衣)를 입은 채로 달리고 뛰어오르네.

      스윽, 스윽, 스윽... 제각각 뛰어 노네.
      춤을 추며 뼈 부딪히는 소리, 날카롭게 들리더니
      쉿! 갑자기 해골들이 원무(圓舞)를 멈추고서
      허둥지둥 앞다투어 날 듯이 달아나네.
      새벽닭이 우는구나.


    ☞  원문은 당연히 불어이겠으나, 필자가 불어에는 문외한인 탓으로... 대신에 영문 번역시를 참고하였다. 우리말 해석
         은 필자가 직접 한 것이기에, 지나친 신뢰는 금물이 되겠다.(^^) 나름대로 시적 느낌이 날 수 있도록 노력하긴 했지
         만, 솔직히 필자가 보기에도 퀄리티가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다. 그저, 가볍게 분위기만 한번 느껴본다는 기분으로
         읽어 보시길 바란다.


중세 이래의 그림 작품들로부터 모티브를 따오긴 했지만, 위의 시에는 <카잘리스> 자신의 상상력이 아주 많이 가미가 되어 있다. 사신(死神)이 들고 있는 큰 낫을 바이올린으로 바꾸어 형상화시키고... 추운 겨울밤, 한밤중의 공동묘지에 울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를, 사신(死神)이 켜는 바이올린 소리로 은유한 대목은... 매우 탁월한 묘사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 자신은 철저히 관찰자의 시점에 서서... 자정부터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의 제한된 시간 안, 한겨울의 공동묘지라는 한정된 공간 안을...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해골들의 무도회장~" 이라는 몽환적 세계로 창조해 낸 것은... <초월적 신비주의>에 입각한 독창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평가해 줄 만 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시에서는, 사신(死神)의 비중이 해골의 비중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같은 <Danse Macabre>라 하더라도... 이 시의 제목은, 단순히 <죽음의 무도> 라고 하기보다 <사신(死神)의 무도회>라고 번역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라고 하겠다.


■  <까미유 생상스 (Camille Saint-Saens)> 의 Danse Macabre


1874년의 어느 날... 당시까지는 아직 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으나, 훗날 프랑스 국민음악의 선구자이자 후기 낭만파 음악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되는 한 작곡가가... <앙리 카잘리스>의 시 <Danse Macabre>와 대면하게 된다. 그는 바로, 유명한 <까미유 생상스 (Camille Saint-Saens, 1835~1921)> 가 되겠다.


    ☞  이 무렵 <생상스>는... 1871년에 파리에서 유지들과 함께 결성한 <국민음악협회>의 중심 멤버로서 활동하고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명성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부터 몇 년 뒤인 1877년에 발표한, 자신의
         오페라 대표작 <삼손과 데릴라 (Samson et Dalila)> 가 호평을 받고 이에 힘입어 <국민음악협회>의 활동이
         활발해지게 되는 1880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작인 <동물의 사육제>
         또한, 1886년도 작품이 되겠다.)

         하지만 1874년의 <생상스>는, 막 40세를 눈 앞에 두고 있던 무렵으로서... 이로부터 불과 3년 후인 1877년에
         <삼손과 데릴라>를 완성시킨 것으로 보아, 이 무렵은... 그의 음악적 기량이 막 정점으로 치닫기 시작하던 시기
         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고 난 <생상스>의 머리 속에, 한 줄기의 영감이 스쳤던 모양이다. 한밤중의 공동묘지에서 새벽닭이 울 때까지 펼쳐지는 죽은 자들의 무도회... <생상스>는 <카잘리스>의 시에 그려진 풍경을, 다시 교향곡 형식의 음악으로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상스>의 4개 교향시 중 3번째 작품인 <Danse Macabre>... 이번 시즌, <연아> 선수의 SP 배경 음악으로 선택된 원곡이 되겠다.

원곡을 들어보면, <생상스>는 <카잘리스>가 상상한 몽환의 세계를 그야말로 생생하게 음악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는데... 겨울 바람이 부는 묘지의 스산한 분위기는 <하프>로, 해골들이 춤을 추다 서로 부딪히며 내는 뼈소리는 <실로폰>으로, 새벽닭의 울음 소리는 <오보에>를 사용하여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으며... 마치 묘지 한 가운데에서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중세 이래 교회 음악에서 사용되어 온 진혼곡인 <디에스이라에 (Dies irae)>의 선율을 인용하여 극적인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기도 하다.


    ☞  <디에스이라에 (Dies irae)>란... "분노의 날" 을 뜻하는 라틴어로서, "레퀴엠 (requiem) 가운데의 속창(續唱)" 을 이
         르는 말이다. (여기서의 <속창>이란 "이어부르는 노래" 란 의미로, 대규모 성가대가 파트를 나누어 같은 곡조를 번
         갈아 되풀이해 부름으로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말한다.)

         <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 이란 뜻이요, 음악에서는 "진혼곡 (鎭魂曲, 넋을 달래는 노래)" 을 의미하며... 카톨릭
         등에서 거행하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즉 <위령(慰靈) 미사>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카톨릭에서는 이 위령 미사를 올릴 때... 복음서 낭독에 앞서 "Dies irae~" 로 시작되는 장대한 속창을 하게
         되어 있다. (13세기 전반, 중세 당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속창의 선율이 죽음의 모티브 혹은 진혼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기에 <생상스>는 이 선율을 자신의
         <Danse Macabre> 클라이막스 부분에 인용했던 것이다. (이 선율은 이 밖에도 수많은 작곡가들에 의하여 인용
         되었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샘플링 선호도 인기 짱~ 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역시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카잘리스>의 원시(原詩)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의 모티브가 되는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선율~" 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마치 사신(死神)의 발걸음 소리같은 Zig, Zig ... 의 네 박자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외줄기 바이올린의 선율... 절정기에 다다른 <생상스>의 음악적 영감이, <카잘리스>가 묘사한 사신(死神)의 이미지에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부여해 준 것이다.

이 교향시가 처음으로 연주되었을 때, 당시의 청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란을 떨었다고 한다. (청중들 중 일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정도였단다.) 곡의 배경을 익히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귀에 다가와 꽂힌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선율~" 이 그만큼 생생했던 모양이다. (필자의 귀에는 처음부터 좋기만 하던데...)


    ☞  하긴 1874년이라면, 우리 역사상 대원군이 최익현의 탄핵으로 실각한 그 이듬해가 되겠다. 대원군 할아버지께서 만
         약 지금 세상을 보신다면...? 모르긴 해도, 왠지 무척이나 노발대발하실 것 같다. (^^) 그리고 아마 그 시절의 양반
         들로서는, 피겨 스케이팅의 아름다움이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오래 전에 필자가 가지고 있었던 클래식 해설서에는, 이 <생상스>의 <Danse Macabre>에 대하여 "무덤에서 나와 춤추는 해골의 기괴함을 생동감 있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뭐, 이런 식으로 씌여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벌써 20년도 더 오래된 책이라, 이 글을 쓰면서 다 뒤져 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아마 이사 다니던 와중에 어디선가 버려진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필자는 저 해설서의 코멘트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골의 기괴함이라든가, 해학적이라든가 하는 설명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가슴에 가장 크게 와닿아 꽂혔던 것은, <생상스>가 만들어 낸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선율~" 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생명력~" 이었다. (물론 "생명력~" 이라고 해도, 이는 "새로 태어나는 아가들에게 부여되는 생명~" 과는 다르다. 따라서 천상의 소리 같은 느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선율은, 죽은 자의 영혼에 숨을 불어 넣어 해골마저 춤추게 만드는 판타스틱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기괴한 선율로 들릴 수도 있다.)

원곡에서는, 장중한 클라이막스 바로 직후... 새벽닭의 울음 소리가 오보에 소리로 표현되고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잠잠한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곡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곡이 끝난 후에도 필자는... 한바탕의 진혼제가 끝난 뒤, 영혼들이 완전한 구원을 받은 듯한 느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잠시 무덤 속으로 숨었을 뿐, 또다른 밤이 찾아와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소리가 재차 울려 퍼지면... 언제라도 해골들이 다시 춤을 추며 일어설 것 같은 여운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이 곡은 <카잘리스>의 원시(原詩)와 그 느낌이 같으므로... 이 곡의 제목으로 쓰여진 <Danse Macabre> 또한, <죽음의 무도> 보다는 <사신(死神)의 무도회>라고 번역하는 쪽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데이비드 윌슨 (David Wilson)> 의 재해석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한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윌슨>은 "<연아> 선수의 새 SP 곡을 고르기 위해서, SP 로 쓸 만한 곡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들어보았다~" 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반짝반짝 빛나던 그의 눈빛은, 필자에게... 그가 실제로 수십 곡, 아니 수백 곡을 정말로 다 들어보았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주었고, 그는 "그런 과정 끝에 결정한 것이, 바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이다~"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를 했었다.


    ☞  지금까지의 글에서, <생상스>의 <Danse Macabre>는 <사신(死神)의 무도회>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낫다~ 라는
         지적을 하긴 했지만... 이미 <죽음의 무도>, <죽무>, <죽도> 등이 모든 승냥이들에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이 마당
         에, 필자 혼자서 어색한(?) 표현을 고집할 생각따윈 추호도 없다. (^^)

         앞으로는 필자 또한, <죽음의 무도>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할 것이거니와... 다만,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머리 속으로는 <사신(死神)의 무도회>라고 새겨두는 것이, 여왕님의 연기를 설명하기에는 더 좋을 것 같다~" 라는
         말씀을, 딱 한번만 더... 드리도록 하겠다. (^^)


그때 당시는 아직 완성된 프로그램을 보기 전이었지만, 필자로서는 벌써부터 두근두근거리는 심정이었다. 많은 분들이 그러셨으리라 생각하지만... 필자 또한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 모두가, 예전부터 익히 알고 좋아하던 음악인 데다가... 특히 <죽음의 무도>는 "전설의 <록산느~>" 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바이올린 선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연갤>에서도, <피버스>에서도... 지나가다 가끔씩 <록산느의 탱고>에 대한 추억을 말씀하시는 분들의 글을 읽게
         되는데...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참으로 많은 승냥이분들께서 이 프로그램에 대하여 복잡한 감회를 가지고 계신 것
         을 느낄 수가 있었고...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좀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마치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같다고나 할까? (^^) 극복해야할 대상임을 알고는
         있지만,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전설로 남아 있기에... 어쩐지 애틋한(?) 느낌으로 대하게 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막상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필자가 느끼고 있었던 불안감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불안감의 원인은... 99% <죽음의 무도> 때문이었다. 어쩐지 이건... 완전히 대박이 터지거나, 아니면 완전히 쪽박을 차거나... 모 아니면 도 식의 결과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  필자로서는 당시, 이상하게도... <세헤라자데>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었다. 워낙에 유명한 넘버이고 <미셸 콴>의
         그림자도 아른거리고 있긴 했지만... <세헤라자데>라면 <윌슨> 횽아와 <연아> 선수의 조합이, 더 잘 만들고 또 잘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올시즌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숙녀티가 나기 시작한 <연아> 선수가 너무 예뻐져 버려서...(^^) 솔직히 필자
         는 "평균 이상의 프로그램만 나와도 <연아> 선수가 링크 위에 서는 순간, 외모에서부터 그냥 <세헤라자데>가 되어
         버릴 걸, 뭐~" 라는 식으로 낙관(?)을 하고 있기도 했다. (^^a;;)

         어쨌든 <세헤라자데>의 경우는, <연아> 선수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서 캐릭터에 녹아들기만 하면 되므로... 연기 외
         적인 면에서 크게 변수가 생길 여지는 별로 없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무도>는 우선... 어떤 그림이 나올게 될 지부터가 오리무중이었다. 프로그램 내에서 <연아> 선수의 캐릭터가 무엇이 될 지조차, 필자로서는 감을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곡의 내용으로부터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라면, <사신(死神)> 아니면 <해골>인데... 오우, 노우~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윌슨> 횽아의 생각은, 과연 무엇인 것일까...?)

여기에 또한 <죽음의 무도> 원곡 자체가, "그다지 아름다운 상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라는 사실도 우려를 더하는 요인이 되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신(死神)>, 춤추는 해골, 닭의 울음소리, 허둥지둥 사라지는 해골들의 모습... 도무지 매력적인 정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너무 산만한 얘기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어쨌든, 필자로서는... 혼자서 방구석에 처박힌(?) 채로, 별별 걱정들이 다 많았던 것이다. (^^) 그런데...

시즌이 시작되고 첫 대회였던 <SA> 당시... 잠깐의 드레스 리허설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벌써 필자의 걱정은 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오오오~ 뷰리풀~ !!! (^^) 대충의 기술 요소 구성이나 동선, 스텝 등만 보아도... 뭔가 물건이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근두근 두근두근~ 잔뜩 높아진 기대치를 안은 채, <SA>에서 <죽음의 무도>가 첫 공개되었다.

두둥~~~ !!!!!!!!!!!

몽환적인 처음의 스타팅 포즈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환상의 엔딩 포즈까지, 필자는 시종일관 TV 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아아... <윌슨> 횽아, 넌 천재야!! 100%, 아니 1000% ... 인정 또 인정!!! 당일, <연아> 선수가 저질렀던 <2A>에서의 작은 실수 같은 건... 필자에게 정말이지 눈꼽만큼도 중요하지가 않았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뭐~ 토닥토닥... 끝!)

편곡, 안무, 기술요소의 배치... 모든 것이 다 완벽했다. 더구나,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연아> 선수가 보여주는 프로그램 내에서의 캐릭터였다. 필자에게 느껴진 이 프로그램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던 것이다.


    ☞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100% 필자만의 개똥철학(?)이 되겠다.
         그러므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부디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


<윌슨> 횽아는, <죽음의 무도> 원곡에서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선율~" 부분만을 딱 떼어내어 왔다. 즉, 바이올린 선율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닭 울음 소리가 들리기 직전... 그러니까 해골들의 무도회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시점에서 프로그램을 딱 끝내 버렸다. 다시 말해, 원곡에서도... 또한 <카잘리스>의 원시(原詩)에서도... 가장 강렬한 부분만을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매우 단순해진다. "죽은 자를 되살려 해골마저 춤추게 하는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소리~" 로 주제가 딱 국한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이야기 속에서 <연아> 선수의 캐릭터는 <사신(死神)>도, 해골도 아니었다. <연아> 선수의 역할은, 바로 바이올린의 선율 자체... 다시 말하자면, 그 선율에 담긴 "생명력의 화신(化身)" 이었던 것이다.

<카잘리스>는 해골을 춤추게 만드는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연주를 상상해 내었고, <생상스>는 그 바이올린의 선율을 실제로 이 세상에 구현해 내었다. 그리고 이제 <윌슨> 횽아는... <김연아>라는 걸출한 피겨 선수의 연기를 통해서 "죽은 자들조차 되살려 내는 궁극의 생명력~" , 바로 그 진면목을 링크 위에 펼쳐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착상인가? (^^)

더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신채점제>는 여전히 여론의 도마에 올라 있음에도, 소위 현재의 여싱 최강국이라는 일본은 "영혼 없는 점프 머신들~" 만을 양산하려 하고 있다. 개뼉다귀(?) 같은 <트악> 타령에, 피겨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 까마득하게 잊혀지게 될 지경인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세계의 진정한 피겨팬들은 차츰차츰 피겨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면서... "피겨팬으로서의 감성~" 을 링크 바닥 깊숙한 곳에 파묻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여싱 판도를 바라보는 팬들의 심정은, 이미 죽은 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윌슨> 횽아는 이야기한다.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그것도 아주 커다란 희망이 남아 있다고 말이다.

무덤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올디스 팬들의 감성을 단숨에 일깨워 되살려 낼, 살아 있는 피겨혼의 화신이 있다. 말로 해 봐야 안 믿을테니... 프로그램 속에서 보여 주마. 흠... 이미 한번 죽어버린 영혼이니, 되살려 내는 데에도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겠다. 그렇다면... 그래, 죽은 자를 되살리는 <사신(死神)>의 바이올린 선율 밖에 없다. <생상스>가 찾아낸 마법의 선율 위를... 아름답기 그지 없는 피겨의 생명력이 타고 흐르도록 만들겠다.

"<연아> 라면... 가능하다~" <윌슨> 횽아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연아> 선수로서는... 이 프로그램을 완성시키는 것이, 곧 자신의 여왕 등극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시들어가는 피겨팬들의 영혼을 되살리는 프로그램... <죽음의 무도>는, 오직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고 새로운 자신만의 왕조를 만들게 될 운명을 타고난... 진정한 여왕만이 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올 시즌이 끝난 이 시점에서, <연아> 선수는 <윌슨> 횽아의 기대를 120% 만족시켰다. <오서> 코치의 절묘한 기술적인 지도 및 조언을 더하여... 향후 세계 피겨사에 길이 남을 이 환상의 드림팀은,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2부>의 글에서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다. (^^)

 

(<2부>로 계속...)